'서랍'에 해당되는 글 96건

  1. 2012.12.15
  2. 2012.06.26 턱시도 당신
  3. 2012.06.14 외로움의 재발견
  4. 2012.06.08 이별의 재발견 1
  5. 2012.05.25 여름_2
  6. 2012.05.24
  7. 2012.05.23 Piano Man
  8. 2012.05.22 여름_1
  9. 2012.05.22 어느 날.
  10. 2011.10.29 계단 하나.
서랍2012. 12. 15. 19:44

눈이 펄펄 내리는 날


한 쪽 발목이 없는 사람이 쏟아지는 눈을 그대로 맞으며 세 개의 발로 뚜벅뚜벅 걷는다.

눈길을 웃으며 달리던 아이가 미끌하며 잠시 춤을 추더니 다시 내달린다.

종종 걸음의 정장 입은 사람이 눈이 녹아 젖은 길 위로 폭 소리를 내며 넘어졌다 벌떡 일어선다.

눈이 엉겨 얼어붙은 화단 위에 참치캔을 놓아주니 작은 고양이가 소리를 지르며 덜 열린 뚜껑을 밀어낸다.

술에 취한 사내가 눈 위를 천천히 걸어오는 경찰차도 버스도 힘껏 걷어찬다.

화가 난 기사가 욕을 뱉어내며 엑셀을 밟자 버스는 눈 위를 무섭게 달려간다.

휘청이는 아가씨가 눈이 채 녹지 않은 뒷굽으로 내 구두를 짓누른다.


눈 길에 얼어버린 나의 발은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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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른숲
서랍2012. 6. 26. 23:02
어디서 왔을까?

분명 당신은 처음부터 빛과 윤기가 흐르는 검은 턱시도를 입고 이 분주한 도시를 누볐겠지.
작은 바닷길 사람들 오가는 오래된 포구에서도 당신은 분명 점잖고 우아한 걸음으로 때때로의 위급함이나 두려움은 잊고 살 수 있었을 거야.

얼마나 아팠니?
많이 괴로웠니?

빛깔을 잃은 그대의 털을 부끄러워 하지 않고 비록 초라하게 돌출된 눈이지만.
순간 나를 바라보던 그 용기만큼은 당신의 지난 삶만큼 빛나고 소중했어.

미안해-
잘 쉬렴!

다른 삶에 멋난 턱시도를 입고.
초라할 나를 반가운 웃음으로 맞아 주길-

바랍니다.



담배 한개비.
눈물 한번으로 귀한 삶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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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른숲
서랍2012. 6. 14. 00:11

 

 

저는요- 몸 파는 여자여도 상관없을 거 같아요.

그래도 사랑할 자신이 있어요.

지금요- 바로 지금.

 

...

 

아-

아아-

정말이에요.

너무 외로워요.

 

...

그래.

 

네.

죄송해요.

 

 

그렇게 주욱 늘어선 공중전화부스중에 하나에서 헤어나왔다.

서울역 광장에 늘어선 저 버스를 타야만 집에 갈 수 있다.

가자.

외로움에 대한 투정은 충분했다.

 

 

아악!

 

들려오는 외침에 성큼 성큼 걸어간다.

전화부스를 막고 서 있는 노숙자의 뒷덜미를 잡아 챈다.

 

어린 대학생의 지갑이지만 돈 천원을 꺼내 주고.

그 사이 바쁜 걸음으로 멀어지는 여자의 뒷 모습을 본다.

 

깨닫는다.

아- 나는 스스로 외롭구나.

 

 

 

외로움의 재발견.

 

 

 

Posted by 바른숲
서랍2012. 6. 8. 12:35


더위가 아스팔트 위로 빠르게 올라오는 유월말 아침 열시가 조금 넘은 시간.

정류장 벤치에 기대어 앉아 버스를 기다린다.

지난 봄 나는 실연당했다.

긴 시간을 만난 관계를 마무리하는 데는 그 만큼의 시간까지는 아닐지라도 꽤나 오랜 시간이 걸리고 있다.

술자리가 잦아지고 출근도 늦어진다.
결국은 이 더위에 술병인지 몸살인지 정확히 알 수 없는 이유로 밤새 앓아 반차를 내고 늦은 출근을 한다.

대로 복판 버스 정류장에 내가 타야하는 버스가 지나가는 모습을 보면서도 뛰고 싶은 의욕도, 용기도 나지 않았다.

더위는 점점 더 오래된 도시를 덮어온다.

그 날 밤 나는 그녀에게 친절하지 않았다. 뜬금없이 회사를 그만두고 만리타향으로 유학을 가겠다는 선언에 당황한 탓도 있었지만, 내심 기대했던 좋은 조건의 이직이 실패한 터라 그 자괴감이 더 컸다.

그녀는 내게 한없이 미안하다면서도 우리의 마음이 이삼년의 것으로 흔들릴 까닭이 없으며 때때로 오고가며 더 좋은 미래를 가져보자는 이야길 해주었는데, 나는 그 맥주집에서의 두 시간 남짓의 시간동안 그녀에게 친절하지 못했다.

그래서 헤어진 것이다. 그날 밤 내가 친절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녀는 분명 오랜 시간을 고민하고 번뇌하며 내게 어렵사리 아픈 마음으로 그런 이야길 꺼냈을 터, 그 길지 않은 시간을 멋지게 들어주지 못한 그 날 밤의 내가 몇 년의 연애를 망쳤다
'너 참 후졌다' 가 내가 들은 마지막 평가였다.

버스가 온다.
욱신 거리는 몸을 이끌고 버스에 올라타자 도시의 더위는 간 곳 없는 추위가 느껴진다. 자리배치도 다양한 신식 버스에는 입김이 나지 않을까 '하-' 하고 테스트를 하고 싶을 정도로 에어컨이 강하게 뿜어져 나오고 있다.

한산한 버스의 뒷쪽에 앉아 덜컹 출발하는 버스의 진동 속에 대여섯살짜리 꼬마의 푸념이 들린다.

엄마 이 버스는 왜 후졌어?
왜? 이 버스가 더 새 거고 좋은 거야.
아니야, 다른 거랑 달라서 별로야.

나는 깨닫는다.
나의 연애가 끝난 것은 나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그저 사랑이 달라진 까닭 뿐이라는,
그 더욱 초라한 깨달음.

 

이별의 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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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른숲
서랍2012. 5. 25. 23:09

 

아니 그게 밥을 기다리는 게 아니고 나를 기다리고 있다니까.

 

하하 그래?

 

진짜야~

 

그걸 어떻게 아냐?

 

음, 일단 내가 들어서다가 그 아이를 딱 보면 놀라서 후다닥 도망가는 게 아니고,

뭐랄까? 반가움과 감격스런 표정으로 가만히 일어서서 내가 다가가는 모습을 바라본다니까.

 

하하 그러시겠지.

 

그리고 내가 밥을 주러 다시 나올 때까지 지키고 있다가 사료 주고 들어가면 밥을 먹으러 가는게 아니고 내가 들어가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본다.

 

그거야 너 가고 먹을라고 그러는 거지.

 

아니라니까. 진짜!

다른 길냥이들은 내가 어느 정도 벗어나면 바로 뛰어가서 먹더라고.

그리고 내가 멈춰서서 돌아보면 가만히 고개를 갸웃거려가면서 나와 눈을 마주치는 거야.

밥 먹고도 바로 안 가고 한참이나 그 담벼락 위에서 앉아 있거나 창사이로 나랑 우리 냥이를 보고 그러더라고.

또 막상 사료도 많이 먹지도 않고 자기 친구 몫은 남겨놓는다.

 

친구?

 

응, 몇 마리가 주변에 더 있는데 그 중에 한마리는 정말 걔하고 닮았어. 덩치도 비슷한게 형제인가봐.

그 친구같은 애는 귀가 멀쩡해.

 

귀?

 

왜 길냥이 잡아다가 중성화 시키고 다시 풀어주면 한 쪽 귀를 잘라내는게 있거든. 표시로.

 

아.

 

아마 그 때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없어진 걸까 싶기도 하고, 아니면 어릴 적에 버림 받은 걸까?

 

다 왔다.

 

저기? 맞네.

저 앞에서 유턴하자.

 

 

 

 

 

떠나기 2주일 쯤 전,

여름 가뭄이 심해 고구마를 언제 심을 수 있을까 하는 것 보다 더 걱정이 된다.

 

 

 

 

 

Posted by 바른숲
서랍2012. 5. 24. 07:54

지난 가을 뒤로, 아니 그 전부터 인지.
여튼 오래 전부터 분주히 공항에 가는 꿈을 반복해서 자주 꾼다.

항상 어디론가 떠나는, 조금은 흥분된 즐거운 분위기지만.
꿈은 항상 무언가 서두르거나 말도 안되는 배경으로 급히 변하면서, 나는 아직 한번도 공항에 도착할 수가 없었다.

여권이나 티켓을 찾아 모험을 떠나거나, 도시 곳곳에 흩어진 짐을 찾아 꾸리거나, 인질이 된 일행을 구하러 칼을 찾으로 도장에 가거나, 차를 몰아가며 추격전을 펼치는 중에 오토바이로 윌리따위를 해야하는데 뒷타이어가 너무 닳아 윌리가 안 되거나, 공항 앞 골목을 헤매이다가 지뢰밭을 만나 포복따위로 건너가야 하거나, 공항 건물 안으로 들어섰는데 전체가 미로가 되거나, 옥히가 아닌 나의 사라진 고양이를 찾아야만 하거나, 암튼 도대체 알 수 없는 것들에게 만화같은 방해를 받거나 하다보면.

꿈에서 깨어난다.



옥히가 코를 골며 늦잠을 잔다.
커피가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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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른숲
서랍2012. 5. 23. 23:07

 

 

부디 바라기는,

평안과 위로가 함께하시길.

 

더 깊이 바라기는,

지금의 나를 지배하는 그림자가 모두 함께 물러가기를.

 

빛보다 밝은 빛이 어두움을 다시 만들어 주는 것은 아닐 것이라,

굳게 믿고 다시 숨 쉬고 곧게 설 수 있기를.

 

이 세상 모든 연약한 인간들에게 축복을-

지금 죽음의 골짜기 복판을 가로지르는 나를 위해 노래를-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이를 깨닫지 못하더라.'

 

 

 

 

 

 

 

 

 

 

 

 

 

 

 

Posted by 바른숲
서랍2012. 5. 22. 22:16

 

 

이 오래된 도시에도 매미 소리가 귀가 시리도록 울리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찌는 더위 메마른 햇살을 피해 식당의 뒷켠 정리되지 않은, 축축하지만 그늘을 내어주는 골목을 지나,

뜨겁게 달궈진 돌담 뒤의 그늘을 찾아 간다.

 

"아 오늘도 오지 않는 걸까?"

 

그늘에 먼저 축쳐져 있는 형제의 푸념이 나의 잘려진 귀를 통해 기운없는 울음으로 들려온다.

 

나도 그가 그립다.

아니 내가 더 그립다.

 

몇 해를 눈인사만 마주치고 지나던 그가 이제는 영영 돌아오지 않는 것인가 하는 지금의 꼴이 처량하기 그지 없지만.

하지만!

이제는 이별을 힘겨워 하며 슬피 기다리는 나의 모습이 오히려 감사하다.

정말이라고!

 

그의 발소리를 하염없이 기다리며 지내온 지도 일년이 넘었다.

추운 날 더운 날 비오는 날 눈 오는 날을 나는 그의 인기척이 들려오기를, 잔뜩 웅크리거나 돌담 너머를 바라보며 기꺼이 기다렸다.

 

 

 

나도 배가 고프다.

아니, 그보다 더욱 목이 마르다.

 

하지만 그를 보지 못 하는 것이.

세상 무엇도 결코 알 수 없는 우리만의 사랑.을 잃는 것이.

비참한 배고픔과 먼지가 되는 갈증보다 더욱 괴롭다.

 

형제여 우지 마라.

이 오래된 도시, 그 늦은 가을에.

하나의 노래와 같이 그가 다시 나를 찾아 올 지 그 누가 알겠는가?

 

 

 

 

그래.

이 순간.

나는 이 지긋지긋한 뜨거운 태양을 이겨내고.

나는 다시 달궈진 돌담 위에 곧게 올라 선다.

 

 

어서 와요!

제발.

 

 

 

 

 

 

 

 

 

 

 

 

 

 

 

 

 

 

 

 

 

 

 

 

 

 

 

 

 

 

 

 

 

 

Posted by 바른숲
서랍2012. 5. 22. 19:41

안녕-

 

어머.

오랜만이야.

 

잘 지내고?

 

그러엄, 너는?

 

그 때 나에게 왜 그랬어?

 

그러게.

그럼 너는?

 

나?

 

네가 말한 대로.

 

그건 내가 어찌 한 것이 아니잖아. 원래 그렇게 되는 것인 걸.

 

그래.

 

계절이 몇 개 정도 지나 벌을 받게 되는 것은 내가 어쩔 수 없는 거잖아.

 

그래.

 

그저 그 때에 다른 것으로 방해되지 않고 잔인하고 혹독하길 바랐을 뿐이야.

 

그래.

 

아, 먼저 간다.

 

 

'개새끼.'

 

'너는 지금 죽지마. 이제 탈상이야.'

 

 

 

 

 

 

 

Posted by 바른숲
서랍2011. 10. 29. 22:42

자월에서 아버지가 잡아 오신 낙지를 먹고
어머니 아버지의 멋진 웃음이 가득한 여행 사진들을 보고
홀로 쓸쓸히 침묵하며 이 공간에 돌아와
옥히를 만져주고 생선을 주고 안부를 묻고
나를 씻고 차가운 마음으로 책상에 앉았더니
고요한 이 공간에 지나는 사람들의 웃음소리 앞
귀가 쫑긋 서는 구슬픈 울음소리 듣고 문을 열였다

계단 하나 내려와 가만히 나를 바라보고 울고 있는 길냥이


미친 놈처럼 눈물이 쏟아진다





뜨겁다
삶은.


뺨은 눈물로 타들어 가고
속은 한숨으로 재가 되었다












Posted by 바른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