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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08.13 summer_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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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05.10 손석희의 시선집중. 손석희.
- 2013.03.13 생일
- 2013.02.25 오늘의 아침
- 2013.02.12 최민식 별세
- 2013.01.17 멈춤.
- 2013.01.17 새와 나무
- 2013.01.10 알만한 결말
"옛날에-"
그러니까 암흑의 시대가 오기 전, 눈과 귀와 입을 열었을 때에-
아침의 습관과 같은 커피와 그의 목소리를 통해 전해들은 수많은 시간들이
지금의 내가 가진 사회 인식에 거대한 영향을 주었다.
너무도 섭섭해 하시는 어머니의 안쓰런 표정과,
듣는 내 마음이 떨리던 그의 마지막 인사와-
긴 시간을 울리던 시그널 뮤직.
자신의 아비가 재벌이면 자신이 재벌의 권세를 누리고
자신의 형제가 판사면 자신이 판사의 위엄을 누리고
자신의 애인이 의사면 자신이 의사의 존경을 누리고
-자 하는.
이 주접들 떠는 미친 세상에.
오랜 시간 나의 아침과 목요일 밤마다 그런 이 세상을 곧게 전해주던 한 사람이.
자신을 잃고 소속된 거대 권력의 그것과 동일시 되어 버리는 나락의 길로 떨어지리라 생각지 않겠다.
딱, 여기까지만 생각하고.
나는 가만히 다시 암흑으로 돌아간다.
고맙습니다.
이 마음으로 깊이 박수를 보냅니다.
감사합니다.
진심.
멈추고 싶었다.
그 가을날 만국기가 휘날리던 시끌벅적한 운동회날.
나는 의무적으로 학생들 모두가 뛰어야 했던 달리기 시합 중에.
멈췄다.
그저 달리기가 싫어서-
노트 한권 없이 돌아온 나를 보며 환하게 웃어주는 엄마를 보자,
까닭없이 어린 울음이 터져나왔다.
"괜찮다 아가야."
출근길 차가 많이도 밀린다.
대체 왜 여기서부터 밀리는 거야?
비상등도 켜지 않은 빨간색 자동차 한대가 고속도로 한가운데 멈춰있고,
다른 차들은 그 빨간색 자동차를 피해 가느라 촘촘히 붙어 흘러간다.
경적소리와 내려진 창문에서 터져나오는 욕설이 들려온다.
이윽고 내가 흘러갈 차례가 되어 냇물에 돌부리 같은 빨간 차를 지나치며,
가만히 그 차 안을 바라보았다.
한 남자가 시선을 아래로 한 채 멍하니 앉아 있다.
떠올랐다.
당신도 달리기가 싫었던 까닭이군요.
그럴 때가 있어요-
내가 왜 이렇게 하염없이 흐르고 달려야 하는지.
잠시 멈추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나는 까닭없이 묵은 눈물을 쏟아냈다.
"아저씨 괜찮아요."
여름날 노래하던 새가 말했어요.
나무야 나무야.
너는 겨울이 견디기 힘들겠구나.
이 멋진 잎사귀들이 모두 떨어지면,
얼마나 초라하겠니?
그 다음 여름의 어느 날 노래하던 새가 말했어요.
나무야.
너는 겨울이 더욱 춥겠구나.
이 무성한 잎사귀들이 모두 사라지면,
얼마나 외롭겠니?
해마다 여름을 노래하던 새는,
때때로 나무의 겨울을 걱정했지만.
나무는 아무 말 하지 않고 어깨를 한껏 펴며
새가 더 편히 노래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 주었어요.
어느 겨울날 새는 문득 찾아와 말했어요.
나무야 나무야.
아직 부를 노래는 많지만 이제 나는 쉬어야겠어.
너만은 부디 이 계절을 잘 보내렴.
이제 새는 더 이상 노래하지 못하게 되었어요.
나무는 말없이 외쳤어요.
새야 새야.
내 잎사귀들이 떨어지고 사라져 서러운 것이 아니라.
네 노래를 더 이상 들을 수 없다는 것이.
더없이 초라하고,
한없이 외롭구나.
나무도 다음 계절을 맞이하지 않겠노라 다짐하고 더 이상 물을 마시지 않았어요.
동화.
오한에 이가 덜덜 부딪히는 소리가 이 고통스런 추위를 한껏 고조시킨다.
한층 혹독해진 이 나라의 날씨는 견딜 수 없게 무덥고 습한 여름과, 실로 매섭게 춥고 건조한 겨울을 번갈아 내달린다.
춥다.
춥다.
저 넘쳐나는 '남'들도 이 모양새로 잘만 살아가는데-
나에게는 왜 이리 어려울까?
이 추위, 이 하루의 추위를 견디기가 너무 버겁다.
똑똑.하고 이성적.이며 쿠-울.한
저 모든 잘난 사람들이 바쁘게 지나는 사무실의 문을 열고.
혼자 멍충이 같은 표정으로 코를 훔치며 길을 나선다.
태양은 뜨겁다.
타오르는 이 오래된 도시의 지긋지긋한 여름.
아- 이 무성하고 비린 녹색이 가득한 가로수 밑,
그 사이의 숨이 턱턱 막혀오는 아스팔트의 열기가.
나의 추위를 비웃으며 말한다.
'알만하다'
알만한 결말.
실은 스스로 알고 있는 것에 대해 모른 척 하는 것이 훨씬 많다.
인생은 바야흐로 미궁이 아니라 알만한 결말로 흘러가게 되는 주된 까닭일게다.
그래, 알만하다.
쯔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