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ntimentale'에 해당되는 글 50건

  1. 2014.09.01 기도
  2. 2014.08.03 합동 분향소
  3. 2014.07.23 niagara
  4. 2014.06.11 幸福, 入場!
  5. 2013.07.24 日幕里 2013
  6. 2013.02.22 10년
  7. 2012.11.02 One more time, One more chance.
  8. 2012.05.08 눈이 내리지 않는다.
  9. 2012.02.22 오늘
  10. 2011.11.16
sentimentale2014. 9. 1. 00:18
주여

Posted by 바른숲
sentimentale2014. 8. 3. 20:39

슬픔 우울함 두려움 같은 것들로.
일순 압도되는 형용할 수 없는 어두움.

 

빛이 어둠에 비추되 어둠이 이를 깨닫지 못 하더라.

우리를 용서하소서.

Posted by 바른숲
sentimentale2014. 7. 23. 00:11
신비합니다.

정말.
인연이 아닌가 하오.

흠,
Posted by 바른숲
sentimentale2014. 6. 11. 19:04

 

 

 

행복, 입장!

 

 

 

 

조영애作

 

 

 

 

 

 

Posted by 바른숲
sentimentale2013. 7. 24. 17:28

 

 

TokyoTower _ 2013

 

 

 

Posted by 바른숲
sentimentale2013. 2. 22. 14:52

십년 전 그 날과 같이.

 

흐른다.

흘러만 간다.

 

 

 

 

 

그 날과 같이.

 

 

 

 

 

 

 

 

 

 

 

 

 

 

 

 

Posted by 바른숲
sentimentale2012. 11. 2. 23:20

 

 

 

これ以上何を失えば 心は許されるの

どれ程の痛みならば もういちど君に會える

 

One more time 季節ようつろわないで

One more time ふざけあった 時間よ

 

くいちがう時はいつも 僕が先に折れたね

わがままな性格が なおさら愛しくさせた

 

One more chance 記憶に足を取られて

One more chance 次の場所を選べない

 

いつでも搜しているよ どっかに君の姿を

向いのホ-ム 路地裏の窓

こんなとこにいるはずもないのに

 

願いがもしもかなうなら 今すぐ君のもとへ

できないことは もう何もない

すべてかけて抱きしめてみせるよ

 

 

寂しさ紛らすだけなら 誰でもいいはずなのに

星が落ちそうな夜だから 自分をいつわれない

 

One more time 季節よ うつろわないで

One more time ふざけあった 時間よ

 

いつでも搜しているよ どっかに君の姿を

交差点でも 夢の中でも

こんなとこにいるはずもないのに

 

奇跡がもしも起こるなら 今すぐ君に見せたい

新しい朝 これからの僕

言えなかった“好き”という言葉も

 

 

夏の想い出がまわる

ふいに消えた鼓動

 

いつでも搜しているよ どっかに君の姿を

明け方の街 櫻木町で

こんなとこに來るはずもないのに

 

願いがもしもかなうなら 今すぐ君のもとへ

できないことは もう何もない

すべてかけて抱きしめてみせるよ

 

いつでも搜しているよ どっかに君の破片を

旅先の店 新聞の隅

こんなとこにあるはずもないのに

 

奇跡がもしも起こるなら 今すぐ君に見せたい

新しい朝 これからの僕

言えなかった“好き”という言葉も

 

いつでも搜してしまう どっかに君の笑顔を

急行待ちの 踏切あたり

こんなとこにいるはずもないのに

 

命が繰り返すならば 何度も君のもとへ

欲しいものなど もう何もない

君のほかに大切なものなど

 

 

 

키세츠요 우쯔로와나이데.

이츠데모 사가시떼이루요 돗카니 키미노 스가타오.

one more time,

one more chance.

키미노호카니 다이세츠나모노나도.

 

 

 

 

 

 

 

 

 

 

 

 

 

 

Posted by 바른숲
sentimentale2012. 5. 8. 04:13

 

오늘도,

겨울은 깊어가지만 그다지 춥지는 않다.

이미 어두워진 시간, 여전히 무거운 하늘에 마른 바람이지만 오늘도 여느 날과 같은 가뿐한 하루가 될 것이라는 당연한 믿음으로 직감실의 문을 연다.

 

나는 이 공업단지의 야간 직감이다. 원래는 3교대로 2명씩 짝을 지어 작지 않은 이 공단의 경비를 맡아왔지만 공단의 전성기가 지나가면서 밤에만 근무하는 나와 낮 근무자들 2명이 남게 되었다. 다시 말하면 지난 30개월 동안 이 공단의 밤의 ‘안전’은 모두 나의 책임이었다. 이 공단에서는 레일 위에 올려져있는 거대한 철문 옆에 자리 잡은 나의(실은 우리의) 공간을 ‘경비실’이 아니라 ‘직감실’이라고 불렀다.

이곳에 온 처음에는 기상 시간이 일정치 않았지만 점차 오후 2시 전후로는 자연스럽게 일어나게 되었다. 간이침대 하나가 놓여있는 관리사무소의 뒤편 숙직실에서 깨어나면 대충 세수를 하고서 이미 점심시간의 뒷정리까지 끝낸 공단 식당을 찾아가 혼자 식사를 한다. 그리고는 다시 숙직실로 돌아와 남은 잠을 청하거나 몇몇의 친숙한 얼굴이 있는 공장들을 들려 그들의 작업하는 모습을 바라보거나 하는 것이 나의 휴식 시간의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저녁 6시가 되면 나는 직감실로 출근을 하고 낮 근무자들과 전달할 것들이나 간단한 안부 정도를 나누고 교대를 한다. 대부분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 퇴근을 하고 공단을 빠져나가기까지의 한가한 시간동안 가만히 오래된 책상에 앉아 사무실의 포근함과 오르락내리락 넓게 펼쳐진 공단의 아스팔트 위에 어둠이 내려오는 모습을 만끽하면서 관리사무소의 전달사항이라던가 메모 등을 확인하거나, 야간작업이 있는 공장이 있는지(이제는 거의 없는 일이지만) 혹은 야간에 특별한 출입사항이 있는지를 숙지하면서 보낸다. 오후 8시 정도가 되면 식당에서 미리 가져다 놓은 김치와 찬밥 반 공기, 라면 하나를 끓여 식사를 마치고 나의 하루, 그 본격적인 ‘근무’의 준비를 마쳤다.

 

30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나도록 이곳을 오가는 사람들의 무표정한 면면들이나 단정하게 펼쳐진 반듯한 아스팔트와 우람하고 굳게 서있는 철골 건물들의 무덤덤한 자세들은 크게 변화가 없었지만 그 소리만큼은 많이도 달라졌다. 점차 밤의 공단이 조용해지면서 직감실의 밤에 찾아오는 소리라고는 야간을 이용한 폐기물과 재활용 고물을 가져가는 밤 11시 즈음의 출입요청 뿐이었다.

“삐리리릭.”

“네.”

“네.”

“네.”

그리고 상차가 끝나고 50분이 넘지 않은 시간에,

“파르르륵.”

“네.”

하는 대화야 말로 적막이 지배하게 된 나의 근무 시간 중 가장 중요한 소리가 되었다. 기묘한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 인터폰의 소리는 마중과 배웅의 외침이 묘하게 다르게 들려온다는 것이다. 같은 인터폰의 같은 알람 소리이지만 역시나 오래된 기계들은 세월과 시간의 깊이를 사람과 같이 쌓아가는 모양이다.

 

몇 가지의 익숙한 업무가 끝나면 나는 오래된 영화 따위를 보여주는 채널을 소리를 죽인 채로 켜놓고 여기저기 공장에서 가져온 작은 잡지 같은 것들을 읽거나, 때때로는 지난날의 것들을 곱씹으며 멍하니 시간을 보내곤 했는데, 부끄럽게도 막상 되새길 추억이 그리 다양하지는 않았다.

 

사실 나는 어린 시절이라던가 학창시절이라던가 하는 것들의 기억이 거의 없었다. 아니, 기억을 잘해내지 못하게 되어버린 까닭일 수도 있겠다. 많은 교육을 받지 못한, 그러니까 중학교 졸업이 내 학력의 전부였기에 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함께 커갈수록 친구들은 나와 대화하기를 꺼려하거나 나에게 큰 소리로 윽박지르는 존재들로 변해갔고, 선생님들도 점차 나를 짐스러워하거나 부담스러워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자, 내 스스로가 그들에게 미안하고 그들이 안쓰러웠기 때문에 더 이상 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결심을 했던 것이다. 나는 결코 바보나 모자란 사람이 아니다. 다만 어떤 이유에서 몇몇의 사람들로 ‘저능아’, ‘병신’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은 있었지만 막상 내 스스로는 그런 그들의 나에 대한 판단이 딱하게만 느껴졌고 왠지 그들에게 알 수 없는 죄의식이나 미안한 마음 같은 것들이 생겨나 아무 변명이나 어떤 반박도 한 적이 없을 뿐이었다. 어찌되었든 그런 이유로 ‘나의 추억’이란 것은 대부분 이 공단에 온 뒤로의 30개월 동안의 것들이었다. 난 이 곳에 와서야 비로소 누군가에게 미안해하지 않고, 내 스스로에게 ‘나는 괜찮다.’는 믿음을 완성시킨 것이다.

 

오늘도 마침내.

그 기다림과 인내의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한 시가 되었다.

나는 이 시간이 되면 잘 손질된 나의 자전거를 타고 이 넓은 나만의 세계를 실로 ‘즐겁고’, ‘한가롭게’ 달린다. 서른아홉 개의 가로등과 스물 한 개의 건물을 자전거로 둘러보면 대략 한 시간 정도가 걸리는데, 이 시간만은 거대한 세상에 나 홀로 유유자적하는 주인공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는, 나의 가장 소중한, 내 일상에서 가장 중요하고 집중할 수 있는 행복함을 허락 받은 순간이 되어 주는 것이다. 특히나 오늘과 같이 한적한 주말의 밤은 한결 더 홀가분한 마음으로 ‘나들이’와 같은 순찰을 오롯이 즐길 수 있는 말 그대로 신나는 ‘선물’과 같은 기쁨의 그 자체가 된다.

 

아, 꽃잎이 흩날리는 봄날에는 나는 한시라도 더 빨리 나가 더 오랫동안 순찰을 돌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여 유난히 참기가 어려울 정도로 이 시간을 고대하고는 하였다. 마지막 방문자인 폐기물과 고철수거차가 물러가는 시간까지 그 달콤한 여행을 만끽하기를 기다리며 인내했다. 공단을 두르고 있는 철책들을 따라 서 있는, 몇 그루의 오래된 벚나무들은 찬바람이 불어올 즈음부터 어서 봄이 왔으면 하는 어린아이와 같은 투정을 하게 했다. (사실 이건 비밀이지만 꽃이 한참 떨어지던 지난날에는 그 나무 밑에서 밤하늘이 파랗게 될 때까지 가만히 앉아 떨어지는 꽃잎을 맞으며 농땡이를 부린 적도 있었다.)

아, 여름날은 또 어떠한가? 여기저기 오랫동안 서 있는 나무들은 그 하나하나가 각각의 숲과 같이 무르익어 비린 냄새까지 내뿜고는 하는 것이다. 그 울창함(실은 오래된 나무들이 간혹 서있는 바이지만)은 나를 중세시대의 말을 탄 기사와 같은 막연한 호기와 정복자의 그것과 같은, 무언가 대단히 의욕적인 마음으로 페달을 밟게 하였다. 한낮 달궈진 아스팔트의 아지랑이가 사라진 밤의 공단을 누비면 더위는 사라지고 청량하고 개운한 땀이 흘렀다.

그렇게 잎들이 메말라 저 바다의 파도소리와 같이 소리를 내는 가을, 차가워지는 밤하늘 속에 맑은 별들이 더 빛나게 보일 때면 나는 우주를 만나는 듯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때때로 가로등을 보수하기 위해 차단기를 내려놓고 하늘로 올라서면, 그 쏟아지는 별들에게 감동을 받아 눈물이 날 지경이 되기도 했다.) 익숙한 내리막에서는 잠시 눈을 감고 코끝과 뺨을 스치는 차가움에서 형용 못할 쾌감과 함께, 다가오는 추위, 이 공단의 겨울을 기꺼이 반갑게 맞이하겠노라고 마음을 열고 각오를 다지기도 했었다.

 

때때로 비가 내리거나 한다면 우비를 입거나 우산을 쓰고 다니게 되는 번거로움이 있게 마련이었지만 나는 오히려 비의 예보가 있거나 하늘이 잔뜩 흐려지는 모습이 보이면 반갑고 설레었다. ‘새벽 한시’라는 순찰시간을 그 날만은 바꿔서, 이 공단에 비가 내리는 모양새나 젖어가는 냄새, 비가 떨어지는 그 소리를 즐기고 싶다는 욕심에 갈등하기도 한다.

(아마도) 다행이지만 이 도시엔 눈이 내리지 않았다. 지난 30개월의 시간동안 두 번의 겨울을 보냈지만 아스팔트에 남는 눈은 본 적이 없었다. 겨울에 몇 번은 눈과 같은 것들이 날리긴 했었지만 차가운 공단의 아스팔트에 닿는 순간 사라져버렸다. 아마도 저 겨울의 하늘보다는 이 공단의 아스팔트가, 내가 서 있는 세상이 더 따뜻하기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눈 밟는 소리를 들으며 순찰을 돌 수 있다면 제법 즐겁지 않을까?’라고 낭만적인 생각을 해본 적도 있었지만, ‘눈이라도 크게 온다면 이 도시는 정지야 정지, 올 스톱. 다행이야 정말.’이라고 했던 13공장의 윤 씨 아저씨 말처럼 ‘눈 치우는 뒷감당이 없어 나에게도 행운이 아닌가?’하는 현실적인 생각으로 욕심은 사라졌다. 사실 이 공단에 눈이 쌓이기라도 한다면 당장에 나는 이 귀한 순찰 시간을 포기한 채 싸리비를 들고 밤새 홀로 도로를 쓸어내며 아침을 맞이할 것이라는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윤 씨 아저씨’의 13공장은 쇠파이프로 간이의자를 만드는 곳이다. 이제는 더 질기고 녹슬지 않는, 게다가 더 가볍기까지 한 플라스틱만으로 된 의자들이 인기인 까닭에 공장을 닫을 차비를 하는 중이었다. 기다란 쇠파이프를 기계에 물리고 페달을 밟으면 단단한 쇠파이프는 순식간에 아름다운 모양의 곡선으로 휘어지게 되는데, 하루 종일 쇠막내기를 올려놓고 발로 밟는 작업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게 있노라면, 한밤에 홀로 이 빈 공단을 지키고 순찰하는 나의 일이 더 멋지고 더 좋은 것 같다는 묘한 자부심으로 으쓱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윤 씨 아저씨는 일을 할 때면 항상 희끗희끗하게 칠들이 번져있는 두꺼운 남색 바지를 입고, 위에는 여기저기 헤진 군복 상의를 걸쳐 입고는 연신 입을 째깍 거리며 커다란 기계의 작은 페달을 밟아댔다. 그는 왼손 두 번째인가 세 번째인가(지금 갑자기 생각이 나지 않는다.)의 한 끝이 없었는데, 어느 겨울 닭계장에 점심을 잔뜩 먹고 작업을 하다 그랬노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해 주었다. 그가 잠시 졸린 틈에 두 겹의 장갑과 손가락 한마디를 쇠파이프와 함께 기계에 물려버린 것이었다.

“차라리 잘렸으면 붙이는 건데 다 뭉개졌어. 쯥쯥.”

나는 우연이라도 그 뭉뚝한 손끝에 눈길이 가게 되면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들어 항상 그의 손을 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에게는 아들 뻘은 되어 보이는 유쾌한 동료가 있다. 그는 ‘야부리’, 윤 씨 아저씨는 그를 야부리라고 불렀다.

“야 야부리. 밥 묵고 하자. 쯥”

"야 야부리, 졸리면 자고 하라, 졸지 말고. 쯥쯥. “

“야아, 야부리. 오늘은 그만 하라. 쯥."

"야 야부리야 우리도 이젠 토요일에 실까? 쯥.“

하지만 야부리는 듣지 못하는 청년이었다. 훤칠한 키에 뽀얗고 작은 얼굴, 누가 봐도 호감 가는 미남이었다. 그는 항상 웃는 모양으로 ‘응응’하는 소리를 내며 연신 손으로 많은 이야길 했지만, 막상 윤 씨 아저씨는 전혀 그 손짓엔 상관하지 않고 혼잣말과 농담을 뱉어내며 지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저희끼리는 언제나 웃고 떠들며 공장 하나를 오랫동안 사이좋게 꾸려가고 있는 것이다.

“야부리는 쯥 다 좋은데, 일을 할 땐 말을 못 하니까 흐흐. 하기는 벤딩 소리엔 말이 안 들리긴 하지. 쯔읍.”

 

아직 구체적으로 날이 정해지지는 않았지만 13공장은 곧 철수한다. 듣기에는 다른 도시로 커다란 기계를 옮겨가서 그때그때 필요한 건축 자재를 구부리는 일을 할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철근의 두께가 항상 같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나도 알 수 있었다. 곧 떠날 윤 씨 아저씨와 야부리를 생각하며 13공장의 걸린 자물쇠를 흔들며 확인하려니 왠지 마음이 시큰하다. 이제 처음 이곳에서 설렘을 가지고 만나게 된 ‘좋은 사람들’은 모두들 떠나가고 ‘추억의 사람들’로 변하고 마는 것이다.

 

그렇게 13공장도 확인을 마치고 이제 3분의 2를 넘어선 순찰은 계속된다. 겨울이 되어 찬바람에 코끝은 기분 좋게 쨍하고, 나의 잘 손질된 철 자전거도 ‘챠르르르’ 하는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며 차가운 도로를 미끄러져 간다. 내가 이 순찰 시간동안 잡념에만 가득차서 자전거를 타거나 그저 생각 없이 이 공단을 스쳐지나가는 것은 결코 아니다. 각 건물에 문들은 잘 닫혀 있는지(보통은 자재나 차량이 출입하는 문과 사무실 문들이 따로 있기 때문에), 소등은 잘 되어 있는지(혹은, 반대로 불이 꼭 켜져 있어야 하는 곳도 있다.), 가로등에 이상은 없는 지 등을 살피며 하나하나의 것들을 꼼꼼히 확인하며 지나간다.

 

지내던 시설의 전도사님 소개로 이 공단에서 일한지 이제 30개월이 다 되었다. 열 번이나 되는 계절의 이 공단의 밤을, 난 온몸으로 지키고 누려왔던 것이다. 처음의 밤은 참 번화했고 분주했다. 많은 공장들이 밤이 늦도록 붉을 밝혔으며 오가는 야간 식사의 배달부들이나 자재와 제품을 실고 드나드는 차량들, 때때로는 공장 한편의 회식 소리나 고기 굽는 냄새 같은 것들이 노랫소리와 함께 흘러왔고, 심야의 라디오 소리도 여기저기서 울리곤 했었다. 같은 채널을 여러 곳에서 틀어놓기 때문에 그 묘한 시차가 항상 이상한 울림이 되어 들려왔다. 그 화려한 공단의 풍경을 멀찍이서 바라보노라면 나도 알 수 없는 흥분에 흐뭇한 웃음이 나고는 했었다.

그 때는 공단 정문의 바로 앞에 몇 개의 함바집들도 있었고 늦게까지 영업을 하며 술을 팔고는 했기 때문에 몇몇의 사람들은 때때로 나에게 함께 나가 대포나 한잔 하자는 친절한 제안을 해주기도 했었다. 물론 나는 결코 나의 일을 두고 빠져나갈 수는 없었다. 술이라고는 멋모르고 소주나 몇 잔 마셔본 것이 내 음주 경험의 전부인 까닭도 있었지만 말이다.

 

그 ‘추억의 사람들’ 중에 역시나 가장 좋았던 것은 2공장의 김 실장님이었다. 그는 언제나 나에게 친절했으며, 그는 언제나 나에게 멋진 인사를 건넸다. 김 실장님은 ‘삐삐’에 들어가는 부품을 만드는 공장의 작업반장이었다. 곧잘 늦은 밤 퇴근길이나 야간작업의 쉬는 시간에 나의 직감실로 찾아와서는 남겨둔 통닭이나 탕수육 같은 것들을 가져다주며 이런 저런 재미있는, 나의 세상 밖의 이야기들을 들려주고는 했었다. 그는 공단에서 일하는 사람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길고 하얀 손가락으로 멋지게 담배를 태우면서 나에게 즐거운 웃음을 나눠주고는 했다. 그래서 나는 그가 와 주길 내심 기다리고는 했고, 기꺼이 그를 위해 재떨이를 준비하거나 계절에 따라 뜨겁거나 차가운 커피 한잔을 진하게 타서 대접하고는 했다.

지난 가을, 제법이나 쌀쌀했던 그날 밤, 그는 잔뜩 술에 취해 찾아와 햄버거와 감자튀김과 탄산음료가 들어있는 종이봉투를 건네주었다. 그 봉투는 아직 따뜻했고 고소한 냄새가 가득했다.

“새로 오는 데가 스피커 만드는 거라던데 2공장이 시끄러워지겠어요. 하하하.”

그렇게 그는 웃으며 나에게 이별을 고하는 악수를 건네고는 다시 멀쩡한 사람처럼 총총히 걸어서 철문앞 비상등을 켜고 기다리고 있던 차를 타고 떠나갔다. 그 차의 빨간 불빛이 멀리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면서 나는 그제서야 그의 손은 길고 하얗고 차갑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느새 오늘의 순찰도 후반부로 접어든다. 문득 그 노래가 떠올라 머릿속으로 흥얼거려본다.

‘따딴다 따라라라라라, 다딴따 따라라라 라라라라~’

 

“우당탕!”

갑자기 나는 자전거와 함께 저 밑으로 떨어지는 느낌으로 튕겨져, 연석을 넘어 꽃과 풀은 이미 메말라 없는 화단 위, 철제 판넬들이 쌓여있는 곳까지 구르고 말았다.

 

잘 손질된 나의 자전거는 앞바퀴가 휘어진 채로 저만치 팽개쳐 지고, 얼굴에선 뜨끈뜨끈하고 비릿한 것이 입안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아, 아니구나.’ 코에서 흘러나온 피가 내 입 안으로 들어오는 것, ‘아 아니구나.’ 코도 입에서도 피가 쏟아진다는 것을 깨닫고서야 나는 내가 생각보다 크게 넘어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를 흔들어보고 침을 거푸 뱉어내고 길 위로 올라서니 왼쪽 정강이에 극심한 통증이 느껴진다. 그때서야 나는 새로 들어오는 공장이 16, 17 건물 간에 도로를 따라서 야외 컨베이어벨트를 설치하는 공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 때문에 두꺼운 아스팔트를 대략 손가락 두 마디 즈음 되는 폭으로 깊이 파내어 놓은 듯 되어 있었고, 뜨거운 칼로 두부를 자른 듯이 매끈하게 잘린 아스팔트의 틈으로 자전거 바퀴가 빠지면서 넘어지고 만 것이다.

 

왼쪽의 팔과 다리가 욱신거리고 처음엔 깨닫지 못한 고통이 몰려왔다. 그대로 다시 연석에 주저앉아 침을 뱉어내고 면장갑을 벗어 피를 훔치며 입안 가득한 비린내를 덜어낸다. 이런 바보 같은 실수를, 그 노래 때문에 순간 시야를 잃었던 까닭이다.

저기 쓰러져 있는 나의 자전거의 휘어진 앞바퀴를 가만히 보고 있으니, 팔과 다리의 고통과 추위가 몰아오며 피가 고인 이들이 부딪쳐 떨리는 소리가 귀까지 들려온다.

‘이걸 어쩌지?’

‘이걸 어쩌지?’

‘이걸 어쩌지?’

우선 다시 이를 흔들어 보고 팔을 주물러 보니 심하게 상한 곳은 없는 것 같다. 다리만은 많이 고통스러웠지만 천천히 일어서면서 걸을 수는 있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놓인다.

‘일단은 직감실로 가야하나?’

‘아니야, 순찰은 마저 해야지 않나?’

‘아, 우선 돌아가서 밝은 곳에서 상처를 봐야 하지 않을까?’

 

나는 순찰을 마저 돌기로 한다.

자전거는 휘어진 앞바퀴가 프레임에 걸리는 통에 굴러가기는 힘들 것 같다.

‘우선은 13공장까지만 가져다 두자. 여긴 공사판이라 버려질 지도 모르잖아.’

자전거를 힘겹게 어깨에 들쳐 메고 다시 13공장으로 돌아간다. 자전거로는 잠시 잠간, 아니 걸어서도 금방인데 왜 이리 길고 멀게만 느껴지는지, 그 마음의 하찮음에 우습기도 했지만 고통과 추위에 막상 웃음이 나오지는 않았다.

‘노래가 문제였어, 노래가.’라고 자책하며 천천히, 천천히, 13공장으로 되돌아간다. 나는 왠지 치열한 전투에서 살아남아 부상당한 동료를 들쳐 업고 기지로 돌아가는 영화 속의 전쟁 영웅이 된 듯 비장함으로 13공장으로 돌아왔다. 공장 현관 옆으로 기대어 나의 자전거를 세워 두자, 오는 동안의 통증과 피로감으로 호흡은 가빠지고 심장은 그 뛰는 소리가 또렷이 들릴 만큼 빠르게 꿈틀되고 있었다. 겨울이 되면 추워지는 한밤의 공기에 하얗게 나의 숨이 뿜어지는 모양새가 왠지 뿌듯함을 주고는 했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 입김이 내 체온을 빼앗고 추위를 자꾸 몰아오는 것만 같아 원망 아닌 원망이 들었다.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어 주변을 돌아보니, 납품이 되지 않아 오랫동안 쌓여있던 의자들의 무리가 보인다. 두터운 천막을 걷어 내고 호기롭게 예닐곱 개를 들어보지만 녹이 슬어 있는데다 몸이 말을 듣지 않으니 잘 뽑혀 나오지 않는다. 천막을 더 걷어내고, 겨우 네 개의 의자를 집어 내어놓고 다시 천막을 잘 덮어 두었다.

시린 손에 의자들을 들고 다시 16. 17공장으로 간다. 끼고 온 면장갑을 피를 닦는데 쓰는 것이 아니었는데 하는 후회를 하며 걸음을 옮긴다. 몇 번은 내려놓고 손을 덥히고 이를 만져보고 피를 뱉어내고 움푹 들어간 다리를 만져보고 다시 움직여 ‘사고 현장’으로 돌아간다.

 

공사 중인 도로로 다가갈수록 어둑어둑한 도로에 파인 흠이 보이지 않은 것은 당연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내 실수만은 아니었어.’하는 마음으로 그 도로를 따라 파인 홈의 끝과 끝 사이와 중간 중간에 간이 의자들을 세워두었다. ‘우선 이렇게라도 해놓으면 누군가 나처럼 실수할 일은 없겠지?’

다시 순찰 코스를 따라 걸었다. 절뚝거리며 양손을 겨드랑이에 넣은 채로 연신 피가 섞인 침을 뱉어내며 20공장을 지나 21공장의 자물쇠 등을 확인하고서야 나는 절뚝거리며 나의 직감실로 돌아가기로 한다.

 

아 춥다. 오늘의 추위는 견딜만한 것이라던 불과 몇 시간 전의 나의 판단이 잘못인 것인지 아니면, 그 사이 정말 심한 추위가 몰려온 것인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다행이 이제 입과 코의 피는 멎은 것 같다. 뱉어지는 숨은 여전히 하얗다. 손등에서 팔꿈치까지의 시큼한 통증과 무릎 밑의 뜨거운 쓰라림과 묵직한 고통 같은 것들이 느껴진다. 어서 빨리 나의 공간으로 들어가 따뜻함과 포근함을 느끼고 싶다. 직감실에 가까워질수록 뜨거운 커피 한잔과 윙 소리를 내는 라디에이터를 가까이 끌어 놓고 손과 발을 녹이고 싶다는 바람이 간절해졌다.

 

도시 학교로 전학한 후 나의 어머니는 더욱 고단하게 일을 하고, 아침이 다 되어서야 돌아오곤 했다. 방학이 되면 나는 거의 매일을 혼자 작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마을의 작고 초라한 교회의 빈 사무실에서 엄마가 돌아오길 기다리며 잠들고는 했었다. 방 한 칸의 어두운 집에서 내가 시간을 보내며 할 수 있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겨울밤 교회의 사무실에서 바구니 하나에 있던 양초들을 휴대용 가스렌즈를 사용해 잔뜩 켜놓고 따뜻하게 비추는 빛들에 잠긴 채로 ‘어린이를 위한 노아의 방주 이야기’나 ‘만화로 된 어린이 성경’ 같은 것들을 읽다가 잠이 들고는 했었다. 몇 번이나 전도사님이나 어른들에게 혼이 나고는 했지만 좁은 교회 어딘가에 숨겨둔 양초를 찾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결국 어느 날 밤인가 잠이 든 틈에 모아놓은 주보니 악보들에 불이 붙어 사무실 한쪽 벽을 검게 태우는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그 밤의 ‘사소한 사건’은 물과 소화기의 분홍색 가루가 떡이 지는 난리가 난 후에야 일단락되었다. 소식을 듣고 도너츠 공장에서 밤샘 일을 하다 허겁지겁 달려온 엄마의 눈을 바라보며 나는 물었다.

“난 아무렇지도 않은데 다들 왜 그러는 거야?”

나의 젊은 어머니는 대답 없이 나를 끌어안고는 그 굵은 손으로 내 등을 연신 때리며 마른 눈물로 걱걱 소리를 내며 울기만 하였다.

시간은 어느새 새벽이었고 작은 교회 안의 헛간 같은 쪽방에서 잠을 자던 시큼한 냄새의 아저씨들이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저 저능아새끼가 우릴 다 태워죽일 뻔 했어.”

아, 그렇다. 그때 나는 비로소 ‘나는 저들에게 미안하다.’는 결심을 내렸던 것이다.

 

한참의 시간을 걸어서야 나는 직감실 현관 위의 작은 처마에 달려 있는 노란 백열등을 볼 수 있었다. 그 오래된 철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포근함과 서러움이 밀려들었다. ‘으으으’ 소리를 내면서 커피를 끓이기 위해 전기포트에 물을 올리고 떨리는 입에 물에 적신 수건을 대고 라디에이터를 끌어다 놓고 몸을 녹인다. 아, 잠시 눈을 감은 틈에 잠이 들어버렸다.

 

오한에 잠이 깼다. 붉게 점멸되는 벽시계는 4시가 막 넘어서 있었다. 팔과 다리는 욱신거림과 쓰라림이, 입에서는 피 내음이 아직 비리고 시큼하다. 라디에이터에 걸쳐 놓았던 수건은 피와 같이 말라가며 꾸득꾸득 소리를 내고 있다. 의자를 책상으로 다시 붙이고 근무 일지를 폈지만 갈증이 느껴진다. 현관 옆 간이 세면대에서 물을 한 컵 받아 벌컥벌컥 마시고 보니 거울 속의 입술까지 퉁퉁 부은 모습이 왠지 한심하여 클클클 소리 내어 웃는다. 바지를 걷어 올려보니 내복을 입은 정강이 위로 두툼하게 부어오른 다리가 걱정이 되긴 한다. 식어있는 전기포트의 물을 다시 끓여 커피 한잔을 타서 책상에 앉아 작업일지를 쓴다.

‘16, 17공장 앞 공사 장소가 위험하여 13공장의 간이 의자 네 개를 가져다 두었음.’

음, 하지만 역시나 다시 한 번 다녀와야겠다. 캐비넷 제일 밑 칸에 있을 붉은 나일론 끈을 가져가서 의자 사이를 둘러두고 이면지나 비닐봉투를 끈 사이에 묶어 두어야겠다.

 

다시 전기포트에 물을 끓여 세면대에 수돗물을 받아 적당히 섞어 세수를 하고, 더러워진 자켓을 수건에 물을 묻혀 슥슥 닦아내었다. 다른 마른 수건 하나를 목에 두르고 새 면장갑을 끼고 그 위에 반코팅 장갑 하나를 더 끼웠다. 비닐로 된 끈 한 두름과 하얀색 봉투 몇 개 그리고 후레쉬와 뻰찌 하나도 챙겼다.

4시 반이 되는 시간, 아마도 교회는 불을 밝히고 이른 새벽 하루가 시작되는 때이겠지만 겨울의 이 공단은 아직도 칠흑과 같은 한밤이다. 정강이의 고통으로 절뚝이고 열이 나는 몸으로 하얗게 숨을 뱉으며 16, 17공장으로 걷는다.

평소와는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는 길은 약간의 오르막이라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순찰이 끝날 즈음의 절묘하게 기분 좋은 가속을 내어주던 내리막이 지금만은 너무도 버거운 고갯길로 변해 있었다.

 

아, 내가 자라던 마을엔 그 복판을 가로지르는 오르막길이 있었다. 그 오르막길 옆으로 슈퍼도 하나, 세탁소도 하나, 자전거포도 하나, 작은 의원도, 피아노 학원도 하나 있었다. 논과 밭과 몇 개의 양계장이나 작은 목장들이 있었고, 오르막길의 끝, 마을의 가장 높은 곳엔 전쟁 통에 바윗돌로 지어진 예쁜 교회와 그 바로 담장 밑에는 내가 다니던 작은 국민학교가 붙어 있었다. 새벽이 되면 노인들은 그 길을 따라 교회에 오르고, 곧 아침이 되면 다시 그 길을 따라 마을의 아이들이 학교에 올랐다. 그 시절엔 마을 옆을 흐르는 개천에서 미꾸라지도 붕어도 잡고 산 밑의 골짜기에서 가재도 도롱뇽도 잡았지만, ‘내가 남들과 무언가 다른 걸까?’라는 의문을 하기 시작하는 즈음이 되자 그 개천엔 녹색의 진흙과 지독한 썩은 냄새, 그리고 마을 귀퉁이에 크게 자리 잡았던 그릇공장에서 나온 폐도자기들이 수북이 쌓여갔다. 시간이 갈수록 작지만 아름답던 교회는 낡고 초라하게 변해갔고, 학교의 높다란 담장도 점점 초라한 모습으로 낮아지게 되었다.

“오라이”를 외치던 읍내로 나가던 버스가 ‘자동문’이라 스티커 붙어진 새 버스로 바뀔 즈음에, 그릇공장에서 일하고 교회에서 청소를 하시던 어머니는 나를 데리고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도시의 어딘가로 이사를 했다.

 

저만치 아까 가져다 둔 간이의자들의 모습이 보인다. 저렇게 의자를 세워 둔 것만으로도 아까와 같은 사고를 예방하기에는 충분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누가 알겠는가? 또 누군가가 콧노래를 부르며 걷거나 휘파람을 불며 자전거를 타다가 다시 사고가 날지도 모르는 일이 아닌가? 의자와 의자들 사이에 끈을 묶고 몇 번을 꼬아서 다시 묶고 그 줄 위에 가져온 봉투들을 띄엄띄엄 묶어 두었다. 역시 종이보다는 봉투가 나았던 선택이었다. 가져온 한 두름의 끈을 다 쓸 요량으로 세 번이나 겹쳐 표시를 해 두었더니 제법 만족스럽다. 이제는 안전하다. 지나가던 고양이도 이 잘려진 아스팔트를 지날 때는 조심하겠지. 설령 만에 하나 이 도시에 눈이 내려 갈라진 틈이 보이지 않게 되더라도 이제 이곳은 안전하다.

 

아, 그렇다. 그 마을엔 겨울에 눈이 많이도 내리곤 했다. 함박눈이 쏟아지는 날에는 친구들과 눈 위를 뒹굴고 뿌려가며 뛰어 놀다가 눈이 멎으면 겨울 논의 얼어붙은 벼의 뿌리들을 피해가며 대나무 같은 것을 신발에 대고 미끄럼을 타기도 했다. (애석하게도 나는 다른 친구들처럼 썰매를 만들어 줄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언제나 눈이 내리면 마을은 포근했다. 추운 것은 나의 손과 발뿐이었다. 그래서 하루 종일을 지치지 않고 뛰고 놀다가 아무도 없는 집에 돌아와서는 손과 발만 가지런히 개어 둔 이불 속에 파묻고 엄마의 인기척이 있을 때까지 곤히 잠이 들고는 했었다.

 

이제 나는 다시 13공장으로 간다. 몸에 열이 나서인지 못 견딜 추위는 사라졌지만 끈을 매느라 벗어둔 장갑은 다시 끼고 자켓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걷는다. 역시 다리와 팔의 통증은 여전하다. 왠지 육체의 고통 때문인지 항상 지나던 이 길이 무섭다고 느껴졌다. 입을 틀어 닫은 거대한 건물들, 그 사이에 몇몇의 가로등들이 찬바람에 쉬잉 하는 소리를 낸다. 여기저기서 바람에 치이는 비닐 천막이 타닥타닥타닥타닥타닥타닥 연신 울리고 있다. 기묘한 공포감에 괜히 더 움츠려들어 부어오른 입과 턱을 목에 두른 수건에 한껏 파묻고는 욱신거리는 왼쪽 다리를 더 빨리 끌어당겨 걸어갔다. ‘나를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을 나의 자전거를 구하러 가자!’

 

작은 시골 마을의 학교에 올라가는 길에는 보통 벽돌과 시멘트로 만들어진 집들만 띄엄띄엄 있었는데, 오로지 단 한집만이 기와를 올린 오래된 나무 대문을 가지고 있었다. 학교에 가는 길에는 닫혀 있는 문이지만 학교가 파하고 돌아오는 오후에는 때때로 그 문은 열려있었고, 그 높은 문턱 뒤로 작은 마당 한가운데 의자 하나를 내어놓고 백발의 노파가 가만히 앉아 있고는 했었다. 하얗게 센 머리에는 비녀를 꽂고 단정한 한복 차림을 하고는 웃음기 없는 창백한 얼굴로 앉아있는 노파의 모습은 어린 우리들에게 이야기 속의 귀신을 만나는 공포감을 느끼기에 충분했었다. 그 집이 있는 골목에 접어들 때 저만치 열려진 대문이 보이면, 아이들은 묘한 공포감과 짜릿함에 ‘우와와’ 소리를 내며 내달리며 지나쳤기 때문에 대문 안에 정말 그 노파가 진짜로 앉아있는가를 매일 확인하지는 못 했다. 하지만 그렇게 내달리는 중에도 심술궂게 한 녀석을 일부러 대문 쪽으로 밀어내고는 하는 장난으로 종종 누군가를 울리고는 했었다.

 

13공장 앞엔 나의 잘 손질된 자전거가 앞바퀴가 주저앉은 채로 처량하게 기대어 있다. 가져온 뻰찌를 가지고 휘어진 바퀴살을 펴기 시작한다. 바퀴가 굴러만 가도 끌고 가야지 싶어서다. 하지만 한참 씨름을 해도 작은 뻰찌로 잔뜩 구부려진 바퀴살을 다 펴기에는 무리다. 장갑과 소매를 젖히고 손목시계를 보니 다섯 시 반이 넘어 가는 시간. 여름이었다면 이미 해가 파랗게 떠올랐을 것이다.

‘이제 그만 돌아가자. 돌아가자, 나의 공간으로.’

나는 단념하고 돌아갈 수밖에 없다. 다시 추위가 느껴지고 다리는 점점 못 견디게 아파온다. 한 십여 미터를 가고 돌아보니 나의 잘 손질된 자전거가 너무 안쓰러운 생각이 들어 다시 한 번 고민하지만 역시 나의 철자전거를 들고 직감실로 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난 다시 걷는다. 지금은 어쩔 수가 없다. 아침에 윤 씨 아저씨에게 좀 실어다 달라고 해야겠다. 아니다. 혹시 윤 씨 아저씨라면 고쳐줄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

 

펄펄 눈이 내리던 어느 날, 이제는 이름도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친구들과 작은 목장 옆의 볏단들을 마구잡이로 가져다 한단, 한단씩 쌓아올려 집처럼, 성처럼 만들어 놀기 시작했다. 그 날 우리를 발견한 그 목장의 주인아저씨는 잔뜩 신나있는 우리들에게,

“볏단 너무 흐트러뜨리지만 말고 놀아라. 껄껄.”

하며 흔쾌히 웃어 주었다.

하얀 설원 위에 짚단으로 만들어진 황토색 집이 세워졌다. 실은 지붕을 제대로 올릴 수가 없으니 담벼락만 있는 볼품없는 모양새였지만, 그 날, 그 눈밭 위에 짚으로 올린 공간에서 뒤엉킨 감촉과 냄새, 그 포근함, 그 즐거운 웃음소리가 이제서야 문득 떠오른다. 그 볏짚으로 만든 노란색 창문 너머로 새파랗게 얼어붙은 하늘과 논밭 위로 하얗게 눈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래, 눈이 오는 날이었다.

 

저 만치 나의 직감실이 보인다. 노란 백열등은 여전히 포근하게 현관을 비춰주고 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가서 뜨거운 커피를 한잔 더 마시고 아침 해를 기다리자. 사람들이 오면 도움을 구해보자. 아니 일요일이라 나올 사람이 없을 테니 관리소장에게 연락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우선은 몸을 녹이고 쉬고 싶다. 우선은 몸을 좀 녹이자.

 

“으악!”

소리와 함께 나는 정신을 잃었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처음 겪는 아픔에 잠시 정신을 잃고 말았다. 잠시 후 고통과 오한에 눈을 떠 일어나려니 정강이의 극심한 통증에 외마디의 비명과 울음이 쏟아진다. 바지를 걷어 올려보려니 온통 피가 흘러 축축하고 끈적끈적하게 젖은 내복과 엉겨 붙어 바지가 올라가지질 않는다. 자켓 주머니의 뻰찌를 꺼내어 바짓단을 뜯고 찢어내기 시작했다. 너무 아파 다시 정신을 잃을 것만 같다.

아, 나의 정강이가 이상한 모양을 하고 있다. 뼈가 부러져 어긋난 모습 그대로 피부를 불룩하게 만들어 둔 것 같았다. 아닌가, 이건 뼈인가? 뼈가 근육과 피부를 뚫고 나와 있구나. 내 눈으로 나의 뼈와 찢어진 근육과 하얗게 김을 내며 쏟아지는 피를 보니 공포감과 통증이 몰려온다. 끔직한 마음에 눈물은 멈춰졌고 어쩔 도리가 없이 그 자리에 웅크려 길 위에 눕는다. 아, 고통인지 무서움인지 피로감인지 불안함인지 알 수 없는 것들이 나를 휘감아 땅속 깊이 끌어 내리는 듯 느껴진다.

 

그 마을을 가로지르는 그 길 한복판 위에, 어릴 적 교회에 걸려있던 나무 액자에 속, 근사한 과일과 빵 같은 것들이 예쁘게, 풍성하게 담겨진 라탄 바구니가 빨간 체크무늬 헝겊위에 가만히 놓여있다. 하늘은 파랗고 하얀 뭉게구름이 마을 너머 멀리 흐르고 있다. 마침 지나던 청량한 바람이 마을을 뒤덮은 아카시아향을 가득 품고는 숨과 함께 내 속으로 들어온다. 이 좋은 날 마을 사람들은 다들 어디에 있는 걸까? 타박타박 오르는 내 걸음 소리만큼 그 그림에서 보던 피크닉 바구니가 내 시야에 가까워진다. 나는 가만히 다가가 나도 모르게 힘껏 그 바구니를 걷어찬다.

나의 시선은 바구니에서 마을을 가로지르는 길을 따라 마을 위의 학교와 그 작은 교회의 십자가를 지나 뭉게구름이 흐르는 파란 하늘로, 하늘로.

 

그 때.

그 때 비로소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내 뺨 위에 떨어지는 것은 분명히 눈이었다.

아, 이 도시에 비로소 눈이 오는 구나.

녹아사라지지 않고 길 위에 그대로 내려앉아 쌓여가는 눈을 가만히 누워 바라본다. 흐려진 시야에 하얀 숨이 겹쳐지지만 나는 확실히 깨닫는다.

아, 오늘은 이 도시의 아스팔트가 더 차가운 게로구나.

눈이 내리는 구나.

눈이 내리는 구나.

직감실로 돌아가자.

여기에 이렇게 누워있어서는 안 된다.

직감실로 돌아가자.

나의 공간으로 돌아가자.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잠이 들었다.

 

후우우음.

난 내 속의 아카시아의 향을 뿜어내듯 숨을 내뱉는다.

 

 

그 날은 그 도시에 유래가 없는 폭설이 내렸다. 다행이 일요일이여서 출근 대란 같은 것은 없었지만 온통 하얗게 변한 설국의 경치를 감상하기가 두려울 만큼의 많은 눈을 퍼부어 주었고, 도시의 학교들은 월요일까지 임시 휴교령을 내렸다.

 

내가 발견된 것은 월요일의 새벽이었다. 몇몇의 출입자들이 비어있는 직감실을 이상히 여겨 공단 관리사무실이나 경찰에 신고를 했지만 단순한 근무지 이탈 즈음이라는 예상과 궂은 날씨 때문에 눈에 묻힌 나를 찾아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새로운 한주가 시작하는 월요일의 새벽녘, 검붉게 물든 눈 속에 파묻힌 채 웅크려 누워 있는 나를 찾아낸 것은 공단의 이름 모르는 한 근로자였다. 그는 처음엔 흠칫 놀라는가 싶더니 가까이 와서는 내 위에 쌓여있는 눈들을 대충 걷어내어 주고 담담히 자신의 공장으로 가서 파출소에 전화를 걸었다.

 

사람들은 기괴하고 기분 나쁜 사건에 대해 한동안 수군대거나 화제로 삼았다.

“아, 그 밤에 있던 좀 아픈 사람? 왜 좀 이상했잖아.”

“얼어 죽었다고? 다리가 부러졌으면 뺑소니 아닌가?”

사람들은 나의 죽음에 잠시 의문을 가졌지만 깊이 알고자 하지는 않았다.

 

사실 나는 잘 알고 있었다. 그날 밤, 그 16, 17공장 앞을 지날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걸. 하지만 그것이야 말로 위기에 빛나는 나의 임무가 아니던가. 누군가 도시와 공장과 물건을 만들듯이 이것이야 말로 나의 일이었다. 사실 세상 사람들이 날 바보라고 생각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나는 언제나 괜찮았다. 나는 내가 괜찮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소중한 일상에 성실하였고, 나는 기꺼이 나의 일을 완수하고자 노력하며 지내왔다.

 

 

 

나는 빈소가 없이 화장되어 도시의 작은 샛강에 뿌려졌다.

그 째깍 거리는 소리로 “불쌍하다, 불쌍하다.”를 연신 내뱉으며 나의 마지막을 수습해 준 윤 씨 아저씨에게 감사한다.

늘씬한 키, 고운 얼굴, 말없이 흐느끼며 나를 곱게 뿌려주던 야부리에게 감사한다.

그리고.

벚꽃이 떨어질 무렵 내가 마지막 누워있던 자리에 소주 한 병을 부어주고는, 가늘고 긴 하얀 손으로 담배 한 대를 다 태우고 돌아간 2공장의 김 실장님에게도 감사한다.

 

 

아,

그 뒤로 오랫동안 도시에는 눈이 내리지 않았다.

 

 

 

 

끝.

 

 

 

 

 

 

 

 

 

 

 

 

 

나의 '김실장님'에게 바칩니다.

 

 

 

 

 

 

 

 

 

 

 

 

 

 

 

 

Posted by 바른숲
sentimentale2012. 2. 22. 22:17

나라는 인간.
정말 참 많이도 후져졌다.
잠시잠간이라도 나를 돌아볼 자신이 없을 지경이구나.
이 부끄러운 마음 네가 더 잘 알고 있으리라.

이 비루한 삶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이제 두려움마저 사라질 지경이다.

겨울이 지나 바람에 봅냄새가 나는 듯한 착각마저 드는 날이었어.
쓰린 속을 잡고 전전긍긍하며 보낸 하루가 더 부끄럽구나.


매일 갖는 해와 항상 끊이지 않는 숨이 나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다시 한번.

네게,
진심으로.
미안하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Posted by 바른숲
sentimentale2011. 11. 16. 11:17






곧 거친 비가 내렸다.

10月 자월도 









Posted by 바른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