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인가.
4호선 산본역에서 전철을 기다리는데.
한가한 주말 오후였나-
자판기 커피 한잔 마시고 사진도 찍으며 있다가.
나도 모르게 한 여자의 옷깃을 끌어낸 적이 있었다.
혼이 나간 듯한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소름이 돋아 옆에 서 있다가.
뛰어들거나 달려들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플랫폼으로 들어오는 전차의 앞으로
가만히 들어서던 그 여자의 옷깃을
잡아채거나 끌어내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가만히, 꽉 잡아주었다.
그 옷깃을.
잡아주었더니.
화를 내더라.
옆구리에 끼고 있던 카메라를 보더니
어디 기자라도 되냐고 횡설수설 하며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했는데
내 남편이 절대 알아서는 안 되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계속 되뇌었다.
어물거리는 눈빛과 촛점이 없는 목소리는,
그 말이 입으로 나오지 않고.
그 시선이 눈으로 나오지 않고.
다만, 그 창백한 피부에서 나왔다.
잠시 후에 역무원 두 명이 뛰어 올라와서
그 여자를 끌고 갔는데
양팔이 잡혀 끌려 내려가면서.
당황하며 바라보고 있는 내게.
자기를 신고한 나쁜 놈이라고 욕을 했지만.
그 화가 난 순간의 원망도
그의 창백한 피부에서 울려 나왔다.
방금 전차의 기사가 놀라 역사에 연락해 데려가는 거라는.
그 역무원의 이야기가.
무슨 까닭인지.
순간 나를 당황함에서 평안함으로 바꾸어 주었고.
나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음 전차를 타고 오이도로 향했다.
지금.
나는 옷깃이 없다.
픽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