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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6.19 존경하는 나의 친구, 상기에게.
sentimentale2010. 6. 19. 23:38

 
중화동에 들어 앉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늦은 밤 술에 취해 길을 잃고 헤매다가 네가 택시비를 들고 날 마중한 적이 있었다.
그 때 한그릇에 삼천 얼마 하던 국밥을 얻어 먹으면서 이 동네가 싫다고 울던 내가.
지금 이 순간. 왜이리 가슴이 시린지.

그 날의 서러움이 지금도 절절히 느껴지는 것이.
사실 삶은 그 때나 지금이나 비슷하기 때문인지.
혹은, 나약한 영혼이 병증은 여전하기 때문인지.



나는 모든 봄에 1997년의 그 봄이 겹친다.
우리 또래의 삶.이 열리는, 교복에서 벗어난 청년의 숨이 시작되었던 봄.
그 중에 너 하나가 내 삶에 남았구나.

잉게 숄이나 이원수의 글과 같은 사회의 부름이 없었다해도.
그 때만 해도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꿈을 사는 네게 묘한 부러움과 동질감을 느끼는 내가 아니였을까-
그래서 초저녁이면 총총히 사라지고, 같이 여행 한 번을 못한 네 선택에 어떤 힐난을 할 수도, 할 까닭도 없는 너였다.



오늘 너의 결혼식.에서 이 개같은 정권이 들어서 처음으로 교회에 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도와 노래로 말씀을 나누고 품어 가는 삶이 얼마나 귀하고 귀한 선택됨이겠니-

결국은. 그런 삶으로 무소의 뿔 처럼 다만 혼자 가는 네게.
하나의 가족을 주시고 평생의 동지를 주신 사람의 신에게 비록 얕지만 마음의 감사와 찬양을 드린다.

각자의 길로 흩어져 가는 우리네 삶이지만.
그 끝에 서서 서로가 웃고 바라보며 지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대체 이 지긋지긋한 삶을 얼마나 멀리 보아야 하는 것일까?
이제 서른 몇개의 숨이 이리도 힘이 든 것이 비단 나만은 아닐 것인데-

네가 바라고 선택한 삶의 마지막 한 켠에 네가 바라는 나의 모습도 있기를, 나도 바라본다.
다만 오늘도, 그런 멀고 먼 순간을 바라며 삶의 능선을 넘고 넘어 또 만나고 또 울고, 또 웃자.

너와 속초 한번을 가보지 못한 지금의 한숨은 미뤄두고 말이다.



너와 함께 찬양하고 기도하지 못하는 내 영혼의 가난함에 네가 이해해 다오.

세상의 소리가 아니라 저 사람의 신의 소리에 답하고 나아가는.
존경하는 나의 벗 상기와, 네 아름다운 아내의 삶에.
나의 마음의 기도를 높이 드리고,
내가 가진 축복을 기꺼이 나누어 주마.


존경하는 나의 친구 상기야-

결혼을 축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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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나의 결혼식이 있던 날이었다.
결혼식이 다 끝나도록
친구 형주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이럴 리가 없는데.....
정말 이럴 리가 없는데.....
식장 로비에 서서
오가는 사람들 사이로 형주를 찾았다.
형주는 끝끝내 보이지 않았다.

바로 그 때
형주 아내가 토막 숨을 몰아쉬며
예식장 계단을 허위적허위적 올라왔다.


“철환씨, 어쩌죠. 고속도로가 너무 막혔어요. 예식이 다 끝나버렸네....”

"왜 뛰어왔어요. 아기도 등에 업었으면서..... 이마에 땀 좀 봐요.”

초라한 차림으로 숨을 몰아쉬는 친구의 아내가 너무 안쓰러웠다.

“석민이 아빠는 오늘 못 왔어요. 죄송해요.”

친구 아내는 말도 맺기 전에 눈물부터 글썽였다.
엄마의 낡은 외투를 덮고 등 뒤의 아가는 곤히 잠들어 있었다.
친구가 보내온 편지를 읽었다.

 

철환아, 형주다. 나 대신 아내가 간다.

가난한 내 아내의 눈동자에 내 모습도 함께 담아 보낸다.

하루를 벌어야지 하루를 먹고 사는 리어카 사과장사가 이 좋은 날, 너와 함께할 수 없음을 용서해다오.

사과를 팔지 않으면 석민이가 오늘 밤 분유를 굶어야한다.

철환이 너와 함께 할 수 없어 내 마음 많이 아프다.

어제는 아침부터 밤 12시까지 사과를 팔았다.

온 종일 추위와 싸운 돈이 만 삼 천 원이다.

하지만 슬프진 않다.

잉게 숄의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을 너와 함께 읽으며 눈물 흘렸던 시절이 내게도 있었기에 나는 슬프지 않았다.

아지랑이 몽기몽기 피어오르던 날 흙속을 뚫고 나오는 푸른 새싹을 바라보며 너와함께 희망을 노래했던 시절이 있었기에 나는 외롭지 않았다.

사자바람 부는 거리에 서서 이원수 선생님의 <민들레의 노래>를 읽을 수 있으니 나는 부끄럽지도 않았다.

밥을 끓여먹기 위해 거리에 나 앉은 사람들이 나 말고도 수천 수만이다.

나 지금, 눈물을 글썽이며 이 글을 쓰고 있지만 마음만은 너무 기쁘다.

"철환이 장가간다. 철환이 장가간다. 너무 기쁘다."

어제 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밤하늘의 오스스한 별을 보았다.

개 밥그릇에 떠있는 별이 돈보다 더 아름다운 거라고 울먹이던 네 얼굴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아내 손에 사과 한 봉지 들려 보낸다.

지난 밤 노란 백열등 아래서 제일로 예쁜 놈들만 골라냈다.

신혼여행가서 먹어라.

철환아, 오늘은 너의 날이다. 마음껏 마음껏 빛나 거라.

친구여, 이 좋은 날 너와 함께 할 수 없음을 마음 아파해다오.

나는 항상 너와 함께 있다.

-해남에서 형주가.



편지와 함께 들어있던 축의금 만 삼천 원....

만 원짜리 한 장과 천 원짜리 세장....
형주가 거리에 서서 한 겨울 추위와 바꾼 돈이다.
나는 겸연쩍게 웃으며 사과 한 개를 꺼냈다.

“형주 이 놈, 왜 사과를 보냈대요. 장사는 뭐로 하려고.....”
씻지도 않은 사과를 나는 우적우적 씹어댔다.

왜 자꾸만 눈물이 나오는 것일까....
새 신랑이 눈물 흘리면 안 되는데.....
다 떨어진 구두를 신고 있는 친구 아내가 마음 아파 할 텐데.....
이를 사려 물었다.
멀리서도 나를 보고 있을 친구 형주가 마음 아파할까봐
엄마 등 뒤에 잠든 아가가 마음 아파할까봐
나는 이를 사려 물었다.
하지만 참아도 참아도 터져 나오는 울음이었다.

참으면 참을수록 더 큰 소리로 터져 나오는 울음이었다.
어깨를 출렁이며 울어버렸다.

사람들 오가는
예식장 로비 한 가운데 서서......


<작가 이철환 님의 글.을 빌립니다.>









Posted by 바른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