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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11.23 AM 라디오 조립
서랍2013. 11. 23. 15:49

오래 전에 라디오 조립에 빠져 살던 때가 있었다.

 

한번은 식지 않은 인두를 쥐었다가 온 손에 화상이 입었었는데-

아버지는 간장에 손을 담궜다가 나를 병원에 데려갔다.

병원에서는 간장에 담갔다는 아버지를 힐난했는데,

그 의사의 무례함에 울고 있으면서도 화가 났다.

 

한동안은 학교 대표가 되어서 혼자 과학실에 남아 라디오 조립 연습을 하던 때가 있었다.

아마도 토요일 오후 정도 였는지 학교에는 인기척이 없었는데-

과학실 문이 열리더니 우루루 보이스카웃 아이들이 들어와 앉았다.

크다란 실험용 책상들에 유니폼을 입은 아이들이 가득차고,

나는 덩그러이 벽 한쪽의 책상을 차지하고 라디오를 만들고 있었다.

그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나의 지도 교사이자, 보이스카웃 지도교사였던 그 선생님께서.

한 아이를 교단에 불러세우고 노래를 부르게 하였는데-

그 아이는 알 수 없는 이상한 읖조림을 끝까지 마치고 내려갔다.

그것이 내가 난생 처음 들은 라이브 랩.이었다.

 

그 시절엔 AM 라디오에 들어가는 저항의 색깔을 모두 외울 지경이었다.

지리한 연습을 마치고, 인천공고였나-

어느 일요일에 인천시 대회를 마치고 돌아왔는데.

아마도 3위였나?

백일장 외에는 처음으로 조회시간 교장선생님께 상을 받았다.

상장을 주고는, 우리 학생이 만든 라디오를 들어보자며 마이크에 그 라디오에서 나오는 소리를 들려주었는데-

덩그러이 운동장 조회대 위에서서 왠지 머쓱하면서도 소리가 잘 안나면 어쩌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국민학교 졸업식날.

학생들 모두가 돌아가고 담임선생님께 부탁해서 한 구절의 글귀를 청했는데.

"미래의 전자공학 박사에게-" 에게 라는 글을 남겨주셨다.

 

난 국민학교 일학년 때는 우등상을 받았지만,

이학년때는 구구단을 못 외어 호되게 혼이 나고 나머지 공부를 한 적이 있고.

삼학년때는 부등호의 원리를 이해 못 해 수업 시간 중간에 쫓겨난 적이 있다.

수학은 커녕 산수도 일찌감치 포기했고-

매번 수능 모의고사에 언어 영역만 백점이 넘었었는데-

수리영역은 항상 힘으로만 풀 수 있는 한 문제 혹은 두 문제만 풀어내어 항상 8점에서 16점 사이를 맞았다.

 

 

라디오를 잘 만드는 것과,

전자 공학 박사와는 관계가 없다.

AM라디오에 필요한 저항의 띠를 모두 외우고 납땜질을 예쁘게 하고 더 많은 주파수가 잡히는 라디오를 만들어 내는 것은,

과학의 원리를 이해하고, 물질의 구조를 파악하고 깨우쳐가는 것과는 어떤 관계도 없다.

 

사실 나는 연극 내지는, 담백한 사진, 혹은 글귀나 써내려가며 살았으면 좋았을 것이다.

 

자꾸 완추부완 여우허팡- 이라는 노래 소리에.

울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항상 '울었다.'라는 과장된 표현으로 나의 감정을 이야기 하지만-

이제 목놓아 울 자신이 없는 내가 너무 초라하다.

 

하염없이 울어버리고-

그냥 쉬고 싶다.는 어리석은 바람만 가득하다.

 

나의 두 다리로 다시 서기 위해서.

지난 몇 개의 계절들을 치열하게 보내면서도.

난 여전히 지쳐있었고-

여전히 두려워하고 있다는 사실만 자꾸 깨닫는다.

손이 벌벌 떨리고 심장의 떨림이 귓가에 울린다.

 

라디오 기판에 작은 부품들을 꽂아 놓고,

니빠로 예쁘게 잘라내고, 먹이 생기지 않게 적당히 납을 녹여 붙이는-

그 허망하고 쓸데 없는 기술의 연마와 같이.

여전히 난 아무 것도 아닌 것이 틀림없다.

 

晩秋不晩 又何妨.

 

 

 

 

 

 

 

 

 

 

 

 

 

 

 

Posted by 바른숲